식물을 키우기로 결심하고 모종까지 준비했다면, 이제 가장 중요한 ‘집’을 만들어 줄 차례입니다. 바로 흙이죠. 초보 가드너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집 앞 공원이나 산에서 흙을 퍼오는 것입니다. 저도 처음엔 “흙이 다 똑같은 흙이지, 사서 쓰는 건 돈 낭비 아니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산에서 퍼온 흙을 화분에 담는 순간, 베란다는 이름 모를 벌레들의 천국이 되었고 흙은 금방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식물 뿌리가 숨도 못 쉬게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먹을 채소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채소용 흙의 비밀’과 실패 없는 배합법을 알려드립니다.
1. 왜 사서 쓰는 흙(상토)이 필요할까?
우리가 흔히 온라인이나 화원에서 사는 흙은 정확히 말하면 ‘상토’입니다. 상토는 식물이 싹을 틔우고 자라기에 가장 최적화된 상태로 만들어진 인공 흙입니다.
가장 큰 장점은 ‘무균 상태’라는 것입니다. 산 흙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벌레 알, 곰팡이 균, 잡초 씨앗이 가득합니다. 실외라면 자연의 섭리에 따라 조절되겠지만, 베란다라는 밀폐된 공간에서는 이것들이 폭발적으로 번식해 식물을 죽게 만듭니다. 또한 상토는 피트모스나 코코피트 같은 가벼운 재료로 구성되어 있어 물 빠짐이 좋고 공기가 잘 통합니다. 뿌리가 마음껏 뻗어 나가야 하는 채소들에게는 최고의 환경이죠.
2. 상토만 쓰면 생기는 문제점
상토가 좋긴 하지만, 상토만 100% 사용해서 채소를 키우면 한계에 부딪힙니다. 상토는 보통 한두 달 정도의 영양분만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키우는 상추나 방울토마토는 생각보다 ‘먹성’이 좋습니다.
상토만 사용하면 처음에는 잘 자라는 것 같다가도, 수확할 때쯤 되면 잎이 노랗게 변하거나 성장이 멈추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상토는 시간이 지나면 부피가 줄어들고 가벼워져서 식물을 튼튼하게 지지해 주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배합’이라는 기술을 써야 합니다.
3. 실패 없는 채소 흙 ‘황금 배합비’
제가 수년간 베란다 텃밭을 운영하며 정착한, 가장 대중적이고 안전한 배합 비율을 공개합니다. 시중의 일반적인 원예용 상토를 기본으로 하여 다음의 재료들을 섞어보세요.
- 원예용 상토 (70%): 기본 베이스입니다. 수분을 머금고 뿌리를 감싸는 역할을 합니다.
- 펄라이트 또는 마사토 (20%): 물 빠짐(배수)을 담당합니다. 상토만 있으면 흙이 떡처럼 뭉칠 수 있는데, 팝콘처럼 생긴 하얀 펄라이트가 들어가면 흙 사이에 공기 층이 생겨 뿌리 부패를 막아줍니다.
- 지렁이 분변토 또는 유기질 비료 (10%): 채소의 맛과 영양을 책임지는 보약입니다. 특히 지렁이 분변토는 냄새가 전혀 없고 영양이 풍부해 실내 가드닝에 가장 추천하는 비료입니다.
이 비율로 섞어주면 물을 주었을 때 시원하게 빠지면서도, 채소가 자라는 내내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을 수 있는 완벽한 터전이 완성됩니다.
4. 흙을 재사용할 때 주의할 점
기존에 꽃을 키우던 화분의 흙이 남았다고 해서 바로 채소를 심는 것은 위험합니다. 이미 이전 식물이 영양분을 다 빨아먹은 ‘빈 껍데기’ 흙일 확률이 높고, 혹시 모를 병균이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흙을 재사용하고 싶다면, 신문지에 넓게 펴서 며칠간 햇빛에 바짝 말려 소독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 후 새 상토와 비료를 5:5 비율로 섞어 ‘기운’을 보충해 준 뒤 사용하세요. 하지만 식탁에 올릴 먹거리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첫 시작만큼은 깨끗한 새 상토를 사용하는 것이 정신 건강과 식물 건강에 모두 좋습니다.
채소 가드닝의 8할은 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좋은 흙에서 자란 채소는 잎이 두껍고 향이 진하며, 병충해에도 훨씬 강합니다. 오늘 알려드린 배합법으로 여러분의 작물들에게 ‘강남 아파트’ 부럽지 않은 튼튼한 집을 선물해 보세요.
핵심 요약
- 노지의 흙은 병충해와 잡초의 위험이 크므로 베란다에서는 무균 상태인 ‘상토’ 사용이 필수입니다.
- 상토 70%, 펄라이트 20%, 비료(분변토) 10%의 비율은 배수와 영양을 모두 잡는 황금 배합입니다.
- 흙의 통기성(물 빠짐)이 나쁘면 채소 뿌리가 썩으므로 반드시 펄라이트 같은 배수재를 섞어주어야 합니다.
다음 편 예고 집이 준비되었다면 이제 ‘빛’을 관리할 차례입니다. 햇빛이 부족한 아파트 거실이나 베란다에서도 채소를 쑥쑥 키울 수 있는 ‘식물 생장 LED 조명의 효과와 설치 팁’을 제4편에서 다룹니다.
여러분은 흙을 만질 때 어떤 느낌을 좋아하시나요? 보들보들한 상토의 감촉, 혹은 직접 흙을 배합할 때의 설레는 마음을 공유해 주세요!